통치의 묘방 13. 구차미봉
통치의 묘방 13. 구차미봉
  • 전형구 논설위원
  • 승인 2019.04.13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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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차미봉(苟且彌縫) : 구차하게 모면하고 미봉으로 넘어간다

[칭찬신문=전형구 논설위원] 만년에 연암(燕巖) 박지원이 병중에 붓을 들었다. 먹을 담뿍 찍어 빈 병풍에다 여덟 글자를 크게 썼다. "인순고식(因循姑息) 구차미봉(苟且彌縫)." 그리고 말했다. "천하만사가 이 여덟 글자 때문에 어그러지고 무너진다." 아들 박종채(朴宗采)가 아버지 연암의 기억을 기록한 과정록(過庭錄)에 보인다.

전형구 논설위원
전형구 논설위원

연암은 이 말을 즐겨 썼다. 「한민명전의(限民名田議)」에서도 이렇게 말했다. "큰 근본이 무너져서 백성의 뜻이 불안하게 되면 요행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음이 없다. 위에서 통치의 계책을 날마다 부지런히 내놓아도 마침내 인순고식으로 돌아감을 면하지 못한다. 아래에서 명을 받드는 것도 이랬다 저랬다 하여 또한 구차미봉에 그치고 만다. 이것이 진실로 천하의 큰 근심이다."

세상일은 쉬 변한다. 사람들은 해오던 대로만 하려 든다. 어제까지 아무 일 없다가 오늘 갑자기 문제가 생긴다. 상황을 낙관해서 그저 지나가겠지, 별일 없겠지 방심해서 하던 대로 계속하다 일을 자꾸 키운다. 이것이 인순고식이다. 당면한 상황은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인순고식의 방심이 누적된 결과다. 차근차근 원인을 분석해서 정면 돌파해야 한다. 하지만 없던 일로 하고 대충 넘기려 든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차곡차곡 쌓인다. 어쩔 수가 없으니 한 번만 봐달라는 것이 구차(苟且). 그때그때 대충 꿰매 모면해서 넘어가는 것은 미봉(彌縫)이다. 그러다가 한꺼번에 터지면 손쓸 방법이 없다.

요즘 나라 일이 꼭 이 모양이다. 한동안 신공항 문제로 시끄럽더니, 이번에는 과학벨트 때문에 난리다. 번번이 정면 돌파가 아니라 구차미봉으로 덮기에 급급하다. 울며 보채면 떡 하나씩 주고 참으라고 한다. 없던 일로 하자고 한다. 중앙의 일처리가 이러니, 지역은 시끄럽게 떠들어서라도 요행을 바란다. 그래야 떡 하나라도 챙길 것이 아닌가.

당초의 좋던 취지는 무색해지고, 없던 문제를 만들어 키운다. 좋은 일 하고 욕만 먹는다. 인순고식도 문제지만 구차미봉은 더 심각하다.

 

- 달아난 마음을 되돌리는 고전의 바늘 끝_일침(一針), 정민, 김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