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윷놀이판에 담긴 한국어 문화'
'윷놀이판에 담긴 한국어 문화'
  • 차분조
  • 승인 2020.0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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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과 한국문학

[칭찬신문=차분조기자] 윷가락에 나오는 5개 이름, 부족국가때 가축의 관직설, 윷판도 하늘의 이치 오롯이 28개 별자리가 펼쳐진 형세, 인생의 희로애락 맛보는 듯.....

어릴 적 새해 명절이 되면, 마을의 너른 마당에서 윷놀이가 벌어지곤 했다. 그때 기억에 남는 아재가 있었는데, 윷판도 없이 말(言)로 윷말을 쓰는 것이었다. 바둑에서 판과 돌 없이 서로 좌표로 두는 바둑을 무석(無石) 바둑이라고 하는데, 고수의 경지에 이른 바둑 기사들만이 할 수 있는 대국이다. 그런데 윷놀이에서는 이를 공중말(건궁윷말)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그 아재는 윷놀이판에서 공중말의 고수인 셈이었다.

원래 윷놀이는 우리 민족에게 기원이 오래된 민속놀이 중의 하나이면서 윷놀이를 하지 않는 지역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아주 전국적인 놀이이다. 윷판에 나오는 이름은 도, 개, 걸, 윷, 모(앞모, 앞밭, 앞여), 뒷도, 뒷개, 뒷걸, 뒷윷(뒤지), 뒷모(뒷밭, 뒤여), 찌도(짜도), 찌개(짜개), 찌걸(짜걸), 찌윷(짜윷, 짜지), 찌모(짜모, 쨀밭), 날도, 날개, 날걸, 날윷(밭지), 날밭(참), 앞모도, 앞모개, 방(방여), 속윷, 속모, 뒷모도, 뒷모개, 사려, 안찌(안지)로 총 29개가 나온다.

4개의 윷가락을 던져 나오는 5개 경우에 도(돼지亥), 개(개犬), 걸(양羊), 윷(소牛), 모(말馬)로 이름을 붙이고, 각 경우 움직이는 칸수를 정해 윷판을 이동하는 놀이다. 그런데 이런 대중적인 놀이에 심오한 이치와 문화적 기원이 담겨 있다니 놀랄 일이다. 5개의 이름은 고대 부족국가 시절 우리 민족에게 중요한 가축 문화가 담긴 관직명인 저가(猪加), 구가(狗加), 우가(牛加), 마가(馬加)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으니 흥미로울 따름이다. 윷판도 하늘의 이치인 천부원본(天符原本)의 원리가 담겨 있다고 한다. 가운데 '방여' 자리가 북극성이고 이를 중심으로 주변 동·서·남·북에 각각 청룡, 백호, 주작, 현무를 두고 각 방에 7개 별자리씩 배치하여, 북극성을 기준으로 총 28개의 별자리가 펼쳐진 형세가 각 방이 놓인 모습이라고 한다.

윷가락의 이름도 그렇다. 앞모는 앞에 나오는 모가 놓일 자리로, 지름길의 앞밭이란 의미로서 운이 따르는 것이다. 뒷모는 그 뒤에 나오는 모가 놓이는 자리로, 지름길을 놓치고 뒤로 돌아간다는 아쉬움이 담긴 이름이다. 찌모 혹은 짜모는 다시 한번 주는 지름길의 기회마저 놓치고 가장 먼 길을 돌아서 가야 되니 마음이 찌든다, 혹은 속이 짜다란 안타까움이 담긴 이름이다. 날모는 마지막 나갈 수 있는 자리란 의미로 붙여진 이름인 것이다. 사려는 한자어인데, 논어에 보면 오백 명의 군사를 '려(旅)'라 하고, 다섯 '려'가 모이면 '사(師)'라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마음에 여유가 있는 곳이라서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이리라. 안지도 한자어인데, 뒤에 수천 호위병을 두고 있으니 가장 안전한 곳이라는 뜻의 '안지(安地)'에서 비롯된 이름인 것 같아서 흥미롭다.

어떤 민속학자는 인생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맛보게 하는 것이 윷놀이판이라고 하는데, 윷판의 형세를 떠올리면 얼핏 그런 것도 같다. 이것을 가지고 농사의 풍년과 흉년을 가늠하는 점을 치거나 개인의 행, 불행을 가늠하는 윷점이라는 것도 있었다고 하니 그럴만하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을 보면 윷놀이는 정월 초하루부터 대보름까지 한단다. 새해에 들면서 고유한 문화와 오랜 역사가 담긴 윷놀이를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한국어 문화를 체험해보심이 어떠신지?

출처: 김덕호 (경북대 국어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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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분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