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줍음의 문학
수줍음의 문학
  • 차분조
  • 승인 2020.0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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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줍음
위대한 예술가의 주요 덕목, 대구 시인 이장희...

[칭찬신문=차분조기자] 수줍음을 미학의 차원에서 언급했다고 김춘수 선생의 말을 되새기곤 한다. 젊은 시절(당시 나는 문단에 갓 얼굴을 내민 대학생이었다)의 나에게 은근히 한 말이어서 미학이라고까지 내세울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젊은이와 늙은이를 구별하는 게 뭔 줄 아니?"라고 물은 그는 "그 사람이 수줍음을 갖고 있는가 없는가에 달려 있다"고 했다. 그때는 웃어넘겼는데,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탁견이라고 무릎을 치곤 했다.

수줍음은 부끄러워함이며, 낯가림이다. 말하자면 사물과 사람에게 눈부셔하는 접근태도다. 그래, 예술은 사물과 인간을 바라보는 수줍은 눈길을 통해 새롭게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수줍은 눈길은 처음 대하는 듯한, 호기심이 가득한 눈길이면서, 사랑의 전조가 되는 설레는 기대에의 눈길이기도 하다. 이런 수줍음이 나이를 먹을수록 더 절실해지는 게 예술세계가 아니겠는가? 어른인 척, 아는 척하는 태도 속에는 사물과 사람에 대한 수줍음이 있을 수 없다. 그런 이의 문학은 그저 늙은이의 관념놀이에 불과할 뿐이다. 위대한 예술가들에게서 발견되는 중요한 덕목의 하나가 수줍음이라는 사실은 그러므로 당연하다.

'수줍음의 미학'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이장희를 꼽겠다. 이장희는 대구 현대문학을 연 시인이다. '금성'은 양주동·백기만 등에 의해 창간되는데, 1924년 5월 제3호에 이장희가 합세함으로써 아연 그 존재감이 환해진다. 이때 선보인 시가 '봄은 고양이로다'이다. 고양이의 털과 눈, 입술을 거쳐 수염으로 이어지는 예민한 봄 묘사. 그 관능적이며 감각적인 표현은 곧 다가올 모더니즘의 징후를 느끼게 한다는 평을 들을 정도다. "우리 근대시사에서 이 시만큼 감각적인 날카로운 촉각을 찾아보기는 쉬운 일은 아니다. 이 감각을 능가하기 위해서는 한 세대가 지난 뒤의 정지용의 출현을 기다려야 했다"며 정지용과 함께 이장희를 한국 모더니즘 문학의 선구자로 꼽기도 한다.

"말라서 팔다리가 길어 보이고 얼굴은 네모나고 넓적한 타입인데 눈이 더욱 크나 선이 단정하고 어딘지 고귀한 일면이 있어 보이지만, 앞으로 꾸부정한 몸맵시를 하고 옆을 보는 법도 없이 껑충껑충 걸어가는 꼴은 하릴없이 굶주린 황새 같았다"고 백기만은 '상화와 고월'에서 묘사했다. 더러 문인들과 어울려 다방 등지에 드나들기도 했으나, 모든 사람을 속물로 보는 배타적인 성격 때문에 집에서 가까운, 당시 문인들의 사랑방격인 이상화네 사랑채 출입도 꺼렸다. 문단에서 소외될 정도로 낯가림이 심했고, 사람을 대하는 데 수줍음을 많이 탔다.

아버지와의 불화로 자식 취급조차 못 받아 평생 빈곤을 떨쳐내지 못했다. 끝내 신경 쇠약 증세에 사로잡힌다. 외부와 교섭을 끊은 채, 엎드려 금붕어만 그리다가 극약을 먹고 목숨을 끊는다. 스물아홉 살의 나이였다. 죽음에 임해서도 수줍음과 낯가림으로 자신을 에워쌌다. 어쩌면 수줍음이야말로 이장희 문학을 태동시키고, 심화시킨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여겨질 정도다. 대구 현대문학의 한 켠이 이런 비극성과 함께, 수줍음의 미학으로 열린 점이 이채롭다. 대구문학이 꾸준히 활기찬 젊음을 유지하는 건 보다 긍정적인 의미로서의 이런 수줍음의 미학 기운을 잃지 않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출처 :  이장희 시인·.국립한국문학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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