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근담 263. 평소의 기억
채근담 263. 평소의 기억
  • 전형구 논설위원
  • 승인 2020.03.02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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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근담(菜根譚) - 263. 평소의 기억_후집 38

 

시당훤잡(時當喧雜) 즉평일소기억자(則平日所記憶者) 개만연망거(皆漫然忘去).
경재청녕(境在淸寧) 즉숙석소유망자(則夙昔所遺忘者) 우황이현전(又恍爾現前).
가견(可見) 정조초분(靜躁稍分) 혼명돈이야(昏明頓異也).

시끄럽고 번잡한 때를 당하면 평소에 기억하던 것도 멍하니 잊어버리고, 깨끗하고 편안한 곳에 있으면 옛날에 잊었던 것도 또한 뚜렷이 떠오르나니, 이것으로서 조용한 곳과 시끄러운 곳에 따라 어둡거나 밝은 것이 판이함을 알 것이다.

* 핵심 주제

안개가 자욱한 새벽길을 홀로 산책하노라면 만감이 교차되며 옛 일까지도 떠오른다. 그러나 복잡한 도심 속에서 복잡한 업무를 처리해 나가려면 어제 일조차도 까맣게 잊는 수가 많다. 급박한 현실에 부딪칠수록 그 일을 처리하는 것이 우선이어서 한가하게 지난날의 기억을 더듬을 여가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오늘날처럼 분주한 생활을 해나가는 우리들로서는 추억 따위는 사치가 될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잊을 것이 있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 법이다. 부모의 은공, 은사의 사랑, 그 밖에도 오늘날의 내가 있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분들의 은혜를 입었던가. 때로는 낙엽을 밟으며, 또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고궁 뜰 안이라도 걸으면서 옛 추억을 떠올릴 일이다.

 

- 채근담, 홍자성 저, 안길환 편역, 고전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