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적 관찰과 영성
공감적 관찰과 영성
  • 김종남 기자
  • 승인 2020.11.10 16: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칭찬신문=김종남 기자] 이 시대 특히 젊은 세대들의 정욕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김종남 목사 일터사역과 선교사를 섬기는 선교 사역을 한다.
김종남 목사 일터사역과 선교사를 섬기는 선교 사역을 한다.

베드로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2:11)'고 말합니다. 요한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구분했고(요일2:16). 야고보는 모든 전쟁과 싸움의 원인이 정욕에서 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약4: 1).

이 말씀을 읽는 독자들이 시대와 연령과 환경에 상관없이 똑 같은 정답을 말 할 수 있을까요? 설교자와 교회가 '정욕'이란 주제어에 정의와 상세한 관찰이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 특히 젊은 새대들의 육체적 정욕은 성과 권력과 물질보다는 그것으로부터 파생되는 달콤한 열매 즉 '편안함'입니다.

안목의 정욕은 '재미'입니다. 어려서부터 컴퓨터와 핸드폰, 테블릿 등온라인의 환경 속에서 자란 세대들은 손 안에서의 재미가 모든 것을 우선합니다.

이생의 자랑은 'SNS중독'으로 전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의/식/주, 하/루/하/루, 순/간/순/간의 활동들이 SNS에서 주목받지 않으면 당혹해 합니다.

젊은 세대들에게 '정욕'이란 단어는 가난하고 험난한 시대를 살아온 기성세대들과는 이미 다른 의미로 생활화되어 버렸습니다. 그들에게 공감적 관찰없는 메시지를 통해 '정욕'이라는 단어의 해석과 그에 근거한, '정욕을 제어하라' 는 설교에 '아멘'의 화답을 끌어 낼 수 있을까요?

기독교의 위기는 설교자가 초래합니다. 교회나 설교자가 공감적 관찰없이 주석이나 자신의 경험, 극단적 보도자료들, 이념적 카테고리에 근거한 메시지가 난무합니다.

기독교의 위기는 목사가 앞장서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성경을 신앙과 행위의 최종적, 궁극적 권위임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기도합니다.
"예수 바르게 믿는, 성경대로 믿는 목사되기를....."

-정원성서교회
-영등포구 국제금융로 106 행진빌딩(311, 312호)
-주일예배 오전 11:30-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