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천재와 기인에 대해 알아볼까요?
조선시대의 천재와 기인에 대해 알아볼까요?
  • 오세창 기자
  • 승인 2021.11.11 12: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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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신문 = 오세창 기자] 박철효 독도사랑회 사무총장이 본 조선시대의 천재와 기인(奇人) 

이번에는 재미있는 조선시대의 천재와 기인에 대하여 2부에 걸쳐 보내 드립니다.

아홉번 과거시험에 모두 장원 급제한 한국 사의 천재 이율곡선생을 한국의 역사상 현인의 경지에 근접한 인물을 꼽으라면 관점의 차이는 있겠지만 율곡 이이 선생을 꼽는데 누구도 주저하지는 않을 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같이 율곡선생은 9번 과거 시험에 모두 장원급제 한 인물이다. 우리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며 또한 예언자적 능력도 뛰어나 임진왜란을 미리 예견하고 10만 양병설을 주장했으며 정치, 경제, 국방 등 모든 분야에 식견이 탁월한 정치가요, 사상가이며, 교육자였고, 철학자였다.

그의 가문은 유명한 신사임당을 어머니로 둔 뿌리깊은 천재가문의 집안이었으며 한국판 제갈공명, 한국정신사의 큰 산맥, 성리학의 대가, 등 여러가지 수식어가 따라 다녔다. 그러나 천재는 단명이라고 했던가 그는 타고난 건강이 좋지 않아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마감했다.

7개 국어에 능통했던 "신숙주"
보통 4-5개의 외국어에 능통한 사람을 보고도 천재라고 극찬을 한다. 그런데 한사람이 7개국어를 할 수 있다면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바로 조선조에 영의정을 지낸 범옹 신숙주가 주인공이다. 정치적인 얘기는 접어 두고 학자적으로만 평가한다면 그는 뛰어난 언어학자였으며 한국최초의 일본관련책 해동제국기를 저술하는 등 어문학에  많은 족적을 남겼다.

그는 특히 설총의 이두문자는 물론 중국어, 몽고어, 여진어, 일본어, 등에 능통했으며
인도어, 아라비아어 까지도 터득했다고 한다. 명문가답게, 일제하 독립투쟁의 주역들인 단재 신채호, 신규식 선생 등이
그의 후손들이다.

조선왕조 실록에 3.000번 이상 등장하는 "송시열"
송시열 그는 선조 임금부터 숙종 임금때 까지의 문신 학자이다. 본관은 은진이며 호는 우암[尤庵]이다.

그의 전성기는 효종때이며 효종임금의 오른팔이 되어 정계의 일인자가 되었다. 그는 문장과 서체에도 뛰어났으며 정계의 명망 때문에 교우관계가 넓었고 방대한 저술도 남겼다.

그러나 우암은 독선적이고 강직한 성품 때문에 교우관계가 끝까지 화합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점이 당쟁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는 성리학으로 철저히 무장된 학자였으며 흙탕물 같은 정치판에는 끼어들지 말아야했다.

그는 83세로 제주도 유배에서 서울로 압송되어 오던중 정읍에서 사약을 받고 죽을때 까지 당쟁과 파벌의 투쟁을 벌인 전형적인 외골수 선비였다.

조선왕조실록에 이름이 3.000번 이상 나오는 사람은 오직 송시열 뿐이며 또 전국 42개 서원에 배향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역사적 비중을 가늠 할 수 있다.

왕의 얼굴 한번 보지도 않고 정승에 오른 "윤증"
그는 과거에 급제하지 않았다. 우암 송시열의 제자로 당쟁의 한 축이었으며 재야의 막후 실력자 소론의 영수였다.

윤증은 왕의 얼굴 한번 보지 않고 우의정 까지 올랐던 우리나라 역사상 단 한명 밖에 없는 인물이었다.

그가 과거에도 응시하지 않았는데 그가 받았던 관직을 보면 36세 때 내시교관 부터 공조정랑, 사헌부 지평, 호조참의, 대사헌, 우찬성, 좌찬성, 83세때 판돈녕부사 까지 계속 관직이 승진되면서 제수 받았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어쨌든 그는 출사하지도 않은 채 재야에서 일정한 세력을 등에 업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한번도 조정에 나가지 않고 왕의 얼굴도 보지 않으며 정승이 되는 진기록을 남겼다.

천재 가문에 또하나의 천재
(이율곡의 아우) "이우"
"왕대밭에 왕대난다"
조선왕조 천재가문인 이율곡, 신사임당 가문이 배출한 또 하나의 천재가 있다. 바로 이율곡의 동생 이우이다.

그는 조선조 통털어 시,서,화,금 [詩,書,畵, 琴]에 타고난 재능을 발휘하여 4절로 불려지는 유일한 인물이다. 천불여이물
[天不與二物]이라 하여 하늘은 인간에게 두 가지를 주지 않는다는 말이있다.

대개 용모가 뛰어나면 머리가 부족하고, 머리가 뛰어나면 행동이 부족하고,
행동이 뛰어나면 지성이 모자라고...
이렇듯 여러 재능을 겸비하기란 천재가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는 그림은 물론 시와 글 가야금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였고 특히 어머니의 화풍을 따라 초충[草蟲], 사군자 등을 잘 그렸으며
초충을 그려 길에 던지면 닭이 벌레인줄 알고 와서 쪼았다는 일화가 있다.

그의 아들 경절도 서(書), 화(畵), 금(琴)에 뛰어난 삼절이었으며 신사임당의 삼절과 자신의 사절을 합치면 십절이 탄생되어 불세출의 기록을 역사속에 남겼다. 신사임당 家의 천재적 재능은 오늘날에도 살아 숨쉬며 역사속의 거울이 되고 있다.

과거급제 60년만에 판서가 된 "윤경"
인간은 불평등 한 것일까? 앞장의 정태화 같은 인물은 판서란 직책은 모두 거치며 정승도 여러차례 거쳤는데, 누구는 급제 60년 만에 겨우 판서에 올랐으니 말이다.

관료들의 경노당 최고령 기록을 갖고 있는 윤경은 30세에 급제하여 90세가 되는 60년만에 공조판서가 되는 불가사이 하고 유일무이한 진기록을 갖고있다.

90이 될때까지 인내하고 꾸준히 자기 관리를 하며 버텨낸 그의 집념과 불굴의 의지는 인간승리의 전형을 보여준 예라 하겠다. 마음이 너그럽고 욕심이 없는 것이 장수의 비결일까? 윤경은 98세 까지 살다 간 장수 인물이며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남기고 있다.

오늘도 천재는 아니더라도 인간승리를 향한 멋진 목요일이 되시기를 응원합니다.

사단법인)독도사랑회
사무총장/박철효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