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박사의 독서경영 -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전박사의 독서경영 -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 전형구 논설위원
  • 승인 2022.03.22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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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박사의 독서경영 -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에서 배우는 독서경영

 

  저자 : 최진석,      출판사 : 위즈덤하우스

 

  “EBS <인문학 특강> 최진석 교수의 노자 강의”라는 부제가 있는 이 책은 저자가 EBS 《인문학 특강》에서 강연한 강의를 정리하고, <매일경제신문>에 연재했던 노자 사상을 정리한 책이다. 이 책은 단순히 노자의 철학을 소개하거나 《도덕경》을 해설하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노자와 《도덕경》을 통해 인류의 생각과 철학이 탄생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살피는 것부터 시작하여 인생철학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개인의 삶을 바꾸는 차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와 국가를 변혁하는 데 노자의 사상이 어떻게 접목될 수 있는지도 알려주고 있다.

  또한 이 책은 우리를 일상에서 좌절하게 만드는 선택, 불안, 사랑, 소통, 행복 등에 관한 문제들에 명쾌한 해법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노자와 공자의 사상을 치밀하게 비교해 동양 사상을 정리하고 있으며, 노자의 사상과 근현대 서구의 사상가들과도 비교해 노자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저자는 2500년 전 노자의 철학을 통해 시대를 살아가는 인문적 힘을 기르고, 진정한 삶의 주인이 되는 법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또한 노자의 생각법을 통해 ‘현대인의 생존법’을 끄집어내는 동시에 지금 우리의 삶과 사유를 뒤흔드는 통찰을 전하고 있다.

 

  저자는 현대인이 외부로부터 강한 신념, 이념, 가치관, 지적 체계의 영향을 받아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잃어간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생각하는 힘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신념이나 가치, 이념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경계에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결국 신념과 기준에서 벗어난 ‘나(자기)’로 돌아가야만 ‘생각하는 힘’, 즉 인문적 통찰력이 생긴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왜 ‘생각’할 수 없게 되었을까? 외부로부터 강한 신념, 이념, 가치관, 지적 체계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반면 ‘경계에 있다’는 것은 신념과 이념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상태를 말하며, 통찰을 하는 사람은 바로 이 경계에 있는 사람이다. 결국 신념을 벗어난 ‘나’로 돌아가야 통찰력, 인문적 사고력이 생긴다. 오래된 현대 철학자 노자를 통해 인문적 힘을 배양할 수 있길 기대한다. 이 책을 통해 궁극적으로 생각의 틀을 깨는 정신적 자유를 회복하고, 진정한 덕성•진정한 행복을 가까운 일상 속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 <서문> 중에서

 

  ‘학고창신(學古創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옛걸을 배우고 익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의미지요. 최근 기업 CEO들 사이에 부는 인문학 열풍도 이 전신과 무관치 않습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경제 싱황에서 성현들의 지혜를 빌려서 돌파하려는 뜻이 드러난 것일 데지요.

  인간은 이 세계에서 자신의 생각을 실현하면서 살아갑니다. 또 생각의 투영을 통해 자신과 아무 관계없이 그저 존재하는 자연 세계와 인간이 관계 맺도록 만들기도 합니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만물 중 인간이 있기 이전부터 존재하던 것 외에, 인간의 생각이 반영되지 않은 것은 단언컨대 단 하나도 없습니다. - <생각은 어떻게 탄생했는가_인간, ‘생각의 터전’을 마련하다> 중에서

 

  노자의 꿈은 인간의 주관성을 완전히 탈피해 자연의 객관성으로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가치’의 세계와 결별하고, 자연이라고 하는 ‘사실’의 세계에서 인간 질서의 근거를 발견하려는 것이죠. 자연이 움직이는 모습을 그대로 따라서 혹은 모방해서 살아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자연의 질서를 인간의 질서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연의 질서는 누구나 관찰할 수 있지요. 또 누구에게나 똑같은 모습으로 열려 있습니다. 그러니 객관적일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투명하고 어디에나 똑같이 적용되는 보편성을 가지게 되겠지요. 천명론을 극복할 수 있는 객관성•투명성은 이렇게 확보되었습니다. - <유와 무로 완성한 노자의 사상_공자와 노자, 천명론을 극복하는 법> 중에서

 

  《주역》의 저자가 이 세계의 모든 존재를 음과 양의 관계로 본 것처럼, 노자는 이 세계를 유와 무의 관계로 봤습니다. 일반적으로 노자의 《도덕경》을 해석할 때 ‘도’를 실체로 보고 이 도의 속성 중 하나를 ‘무’라 풀이합니다. 이 ‘무’에서 ‘유’가 나오고 ‘유’에서 ‘만물’이 나온다고 노자 철학을 해석해요. 그런데 이는 틀린 겁니다, 만물에서 유로, 유에서 무로, 무에서 도로 상승하는 구조는 《도덕경》 안에 존재하지 않아요. 이런 잘못된 해석은 아마 근대 실체론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가 아닌가 합니다. - <가짜에 속지 않는 법, 관계론_관계론 철학의 전형, 《도덕경》> 중에서

 

  ‘나는 나다’라고 하면 내가 내 개성으로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내가 존재하는 근거인 나만의 ‘본질’을 내가 가지고 있다는 뜻이 되겠죠. 그런데 ‘나는 타인의 타인이다’라고 하면 나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로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됩니다.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드러나는’ 사람입니다. 노자는 이 세계 역시 ‘드러나는’ 것이라고 봤습니다. 모순의 공존으로 드러나는 것이지요. 그래서 ‘공(功)’도 노자의 시선에서는 ‘이루는 것’이 아니라 ‘이루어지는 것’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 <무위, 변화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_나는 타인의 타인일 뿐> 중에서

 

  노자는 여기서도 반대되는 것들이 공존하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아름다운 덕목도 그 배후의 어두운 면과 함께 공존하며 가는 것임을 힘주어 말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노자는 왜 대립면의 공존을 계속 강조할까요? 대립면의 공존을 강조해야 보편적 이념의 성립을 차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립면이 공존할 때는 어떤 특정한 가치가 우월한 지위를 가질 수 없어요. 노자가 대립면의 공존을 ‘무위’를 실천하는 기반으로 항상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 <불편한 법칙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_‘선(善)’이라는 이름의 모순> 중에서

 

* 전박사의 핵심 메시지

 

  이 책은 세계가 본질이나 중심이 아닌 ‘관계’로 되어 있다고 본 노자 사상을 꿰뚫어봄으로써 ‘생각하는 힘’을 복원하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노자는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라’와 ‘자기로 돌아가라’를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자기’로 돌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자기 자신을 일반명사 속에 함몰되게 방치하지 말고, ‘고유명사’로 살려내라는 것이다. ‘고유명사’로 살아가는 것은 결국 자기로부터의 혁명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공자와 견주어 봤을 때 전혀 뒤처지지 않고 있지만 오랜 세월 유교의 영향으로 공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세였던 노자의 도가 사상은 ‘자기’로 돌아가라는 메시지가 중요한 울림이 되고 있다.

 

  노자의 중심 사상은 자연의 질서, 즉 도(道)를 인간의 질서로 응용하자는 것을 바탕으로 ‘유무상생(有無相生)’이다. ‘유’와 ‘무’가 서로 공존하는 것이다. 한 예로 ‘주인의식’과 관련해서는 역으로 자기가 스스로를 주인으로 생각지 않고 ‘손님’으로 여겨야 상대방과 열린 관계로 상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2500여 년 전에 세상을 향해 던졌던 노자의 사상은 오늘날에도 중요한 화두로 자리 잡고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화두가 바로 ‘상생’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상생, 고용자과 종업원간의 상생, 갑과 을의 상생 등 사회 곳곳에서 상생이 잘 되지 못하다 보니 분란과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유무상생’을 삶의 지혜로 던진 노자의 사상을 통해 아름다운 사회, 행복이 가득한 사회를 만들어 가면 좋을 거 같다. 공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노자의 인문학을 좀 더 알 수 있고 그의 사상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이 책에서 발견해 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