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표정 20. 이명비한
마음의 표정 20. 이명비한
  • 전형구 논설위원
  • 승인 2019.01.24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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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비한(耳鳴鼻鼾) : 귀 울음과 코골기, 어느 것이 문제일까?


[칭찬신문=전형구 논설위원] 귀에 물이 들어간 아이에게 이명(耳鳴) 현상이 생겼다. 귀에서 자꾸 피리 소리가 들린다. 아이는 신기해서 제 동무 더러 귀를 맞대고 그 소리를 들어 보라고 한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고 하자, 아이는 남이 알아주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시골 주막에는 한 방에 여럿이 함께 자는 수가 많다. 한 사람이 코를 심하게 골아 다른 사람이 잘 수가 없었다. 견디다 못해 그를 흔들어 깨웠다. 그가 벌떡 일어나더니 내가 언제 코를 골았느냐며 불끈 성을 냈다. 연암 박지원이 <공작관문고자서(孔雀館文稿自序)>에서 들려준 이야기다.

귀 울음(耳鳴)과 코 골기(鼻鼾)가 항상 문제다. 이명은 저는 듣고 남은 못 듣는다. 코 골기는 남은 듣지만 저는 못 듣는다. 분명히 있는데 한쪽은 모른다. 내게 있는 것을 남들이 알아주지 않거나, 남들은 다 아는데 저만 몰라 문제다.

연암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한다. 이명은 병인데도 남이 안 알아준다고 난리고, 코 골기는 병이 아닌데도 남이 먼저 안 것에 화를 낸다. 그러니 정말 좋은 것을 지녔는데 남이 안 알아주면 그 성냄이 어떠할까?

진짜 치명적인 약점을 남이 지적하면 그 분노를 어찌 감당할까? 문제는 코와 귀에만 이런 병통이 있는 것이 아니다. 공부도 마찬가지이다. 별 것 아닌 제 것만 대단한 줄 안다. 이명증에 걸린 꼬마다. 남 잘한 것은 못 보고 제 잘못은 질끈 눈감는다. 언제 코를 골았느냐고 성내는 시골 사람이다.

내가 성취가 있는데 남이 칭찬해 주면 더할 나위 없지만, 사람들은 칭찬에 인색해서, 헐뜯고 비방하기 일쑤다. 내가 아무 잘한 것이 없는데 뜬금없이 붕 띄워 대단하다고 하면 그 자리가 참 불편하다. 그러니 변덕 심한 세상 사람들의 기리고 헐뜯음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할 것이 못된다. 내 자신에게 떳떳한지 돌아보는 일이 먼저다.

좋은 글을 쓰고, 본이 되는 삶을 살려면 어찌 해야 하나? 제 이명에 현혹되지 않고, 내 코고는 습관을 인정하면 된다. 남을 헐고 비방하는 것은 일종의 못된 버릇이다. 비판과 비난을 구분 못하는 것은 딱한 습성이다.

내 득실이 있을 뿐, 남의 훼예(毁譽)에 휘둘리면 못쓴다.

 

- 달아난 마음을 되돌리는 고전의 바늘 끝_일침(一針), 정민, 김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