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표정 25. 설니홍조
마음의 표정 25. 설니홍조
  • 전형구 논설위원
  • 승인 2019.01.30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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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니홍조(雪泥鴻爪) : 눈 진흙 위에 난 기러기의 발자국

[칭찬박사=전형구 논설위원] 송나라때 소식(蘇軾)이 지은 아우 소철(蘇轍)이 민지(澠池)에서의 예일을 회상하며 쓴 싱에 화답하여(和子由澠池懷舊)란 시다,

인생길 이르는 곳 무엇과 비슷한가, 기러기가 눈 진흙을 밟는 것과 흡사 하네. 진흙위에 우연히 발자국 남았어도 날아가면 어이 다시 동서를 헤아리랴. 노승은 이미 죽어 새 탑이 되어 섰고 벽 무너져 전에 쓴 시 찾아볼 길이 없네. 지난날 험하던 길 여태 기억나는가? 길은 멀고 사람은 지쳐 노새마저 울어 댔지.”

시의 뜻은 이렇다, 사람의 한생은 기러기가 눈 쌓인 진흙밭에 잠간 내려앉아 발자국 남기는 것과 같다, 기러기는 다시금 후루룩 날아갔다, 어디로 갔는가 알 수가 없다, 예전에 우리 형제가 이곳을 지나다가 함께 묵은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를 맞아주던 노승은 그사이에 세상을 떠나 새 탑에 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예전 절집 벽에 적어둔 시는 벽이다 무너져 이제와 찾을 길이 없다. 분명히 내손으로 적었건만 무너진 벽과 함께 흙으로 돌아갔다. 틀림없이 있었지만 어디에도 없다. 여보게 아우님 그 가파르던 산길을 기억하는가? 길은 끝이 없고 사람은 지쳤는데 절룩거리는 노새마저 배가 고프다며 울어대던 그길 말일세. 이제 그 기억만 남았네. 그 안타깝던 마음만 이렇게 남았네.

설니홍조(雪泥鴻爪)라는 말이 이 시에서 나왔다. 눈 진흙 위의 기러기 발자국 이란 말이다, 분명히 있지만 어디에도 없다. 자취만 남고 실체는 없다. 한 해를 바쁘게 달려왔다, 일생을 숨 가쁘게 살아왔다, 여기저기 어지러이 뒤섞인 발자국 속에는 내 것도 있겠지 아웅다웅 옥신각신 다투며 살았다. 한번 밀리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사생결단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하지만 돌아보니 덧없다. 발자국만 남기고 기러기는 어디 갔나?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인간들이 오늘도 사는 해 백년을 못 채우면서. 언제나 천년근심 지닌 채 산다(生年不滿百,常懹千歲憂).

90대 노부부는 세밑의 구세군 냄비에 2억 원을 넣고 자취를 감췄다. 천년만년 절대 권력을 누릴 것 같던 북한의 독재자는 심근경색으로 돌연히 세상을 떴다. 누구나 죽는데 그것을 모른다. 자취가 남은들 어디서 찾는가? 눈이 녹으면 그 자취마저 찾을 길이 없으리.

 

- 달아난 마음을 되돌리는 고전의 바늘 끝_일침(一針), 정민, 김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