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신문=전형구 논설위원] 남계우(1811-1890)는 나비 그림을 잘 그려 남나비라는 별명으로 더 알려졌다. 그의 집은 도성 안 당기지골(현 한국은행 뒤편)에 있었다. 집에 날아든 나비를 평상복 차림으로 동대문 밖까지 쫓아가 기어이 잡아서 돌아왔다는 일화도 있다.
그는 수백 수천마리의 나비를 잡아 책갈피에 끼워놓고 그림을 그렸다. 실물을 유리에 대고, 그 위에 종이를 얹어 유지탄(柳枝炭)으로 윤곽을 그린 후 채색을 더했다. 노란색은 금가루를 쓰고, 흰색은 진주가루를 사용했다. 그의 그림은 워낙 정확해서 나비학자 석주명은 무려 37종의 나비를 암수까지 구분해 낼 수 있었다.
위당 정인보 선생이 석주명이 소장하고 있던 남계우의 나비그림 10폭 병풍을 감상한 후 역시 10폭 병풍에 시로 써 준 ‘일호화접도행’이란 작품을 보았다. 위당은 이 작품에서 남계우의 10폭 그림을 한 폭 한 폭 꼼꼼히 묘사한 뒤에, 그의 그림이 혜환 이용휴와 임연 이양연의 시문과 다산 정약용의 총서로 이어진 남인과 소론의 박학, 즉 실학을 잇는 가치 있는 작품임을 밝혔다.
석주명에게 써 준 다른 시에서는 남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나비 연구에 한눈팔지 않고 몰두하여 세계적인 학자가 된 석주명의 노력에 깊은 경의를 표했다. 석주명은 제자들에게 늘 남들이 관심 없는 분야에 10년 이상 꾸준히 몰입하면 세계 제일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들려주곤 했다. 그의 ‘조선산 접류 분포도’는 1940년에 영국왕립학회의 의뢰를 받아 뉴욕에서 인쇄되었고, 지금까지 생물 지리학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십년유성(十年有成)! 10년은 한 우물을 파야 뭐든 이룰 수가 있다.
- 달아난 마음을 되돌리는 고전의 바늘 끝_『일침(一針)』, 정민, 김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