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창의 탄식 6. 필패지가
진창의 탄식 6. 필패지가
  • 전형구 논설위원
  • 승인 2019.03.06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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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패지가(必敗之家) : 틀림없이 망하게 되어 있는 집안

[칭찬신문=전형구 논설위원] 김근행(金謹行)은 오랜 세월 권력자를 곁에서 섬긴 관록 있는 역관이었다. 그가 늙어 병들어 눕자, 젊은 역관 하나가 죽을 때까지 받들어 지켜야 할 가르침을 청했다. 그가 말했다. "역관이란 재상이나 공경(公卿)을 곁에서 모실 수밖에 없네. 하지만 틀림없이 망하고 마니 집안 근처에는 얼씬도 말아야 하네. 잘못되면 연루되어 큰 재앙을 입고 말지.“

전형구 논설위원
전형구 논설위원

"필패지가(必敗之家)를 어찌 알아봅니까?"
"내가 오래 살며 수많은 권력자의 흥망을 이 두 눈으로 지켜보았지. 몇 가지 예를 들겠네.
첫째, 요직을 차지하고 앉아 말 만들기를 좋아하고, 손님을 청해 집 앞에 수레와 말이 법석대는 자는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네.
둘째, 무뢰배 건달이나 이득 챙기려는 무리를 모아다가 일의 향방을 따지고 이문이나 취하려는 자치고 오래가는 것을 못 보았지.
셋째,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점쟁이나 잡술가(雜術家)를 청해다가 공사 간에 길흉 묻기를 좋아하는 자도 틀림없이 망하고 마네.
넷째, 공연히 백성을 사랑하고 아랫사람을 예우 한다는 명예를 얻고 싶어 거짓으로 말과 행실을 꾸며 유자(儒者)인 체하는 자도 안 되네.
다섯째, 이것저것 서로 엮어 아침의 말과 낮의 행동이 다른 자는 근처에도 가지 말게.
여섯째, 으슥한 길에서 서로 작당하여 사대부와 사귀기를 좋아하는 자도 안 되지.
일곱째, 언제나 윗 자리에 앉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자도 꼭 망하게 되어 있네. 윗 사람을 모셔도 가려서 해야 하네. 그가 한 번 실족하면 큰 재앙이 뒤따르지.
특히 기억하게나. 다른 사람이 자네를 누구의 사람이라고 손꼽아 말하는 일이 있어서는 결코 안 되네." 『송천필담(松泉筆談)』에 나온다.

성대중(成大中)이 말했다. "기미(幾微)로 이치를 밝히고, 현명함으로 의심을 꺾는다. 깊이로 변화에 대처하고, 굳셈으로 무리를 제압한다. 이 네 가지를 갖춘다면 바야흐로 적과 대적할 수가 있다(幾以燭理, 明以折疑, 深以處變, 毅以制衆. 四者備, 方可以應敵)."

리더라면 이쯤은 되어야 한다. 뻔한 것을 못 보고, 툭하면 의심하며, 경솔하게 바꾸고, 무리에게 휘둘리면 세상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바야흐로 정가에도 짝짓기 철이 다가온 모양이다. 줄을 잘 서는 것이 관건이겠는데, 명심하게나! 사람들이 자네가 누구의 사람이라고 말하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되네.

 

- 달아난 마음을 되돌리는 고전의 바늘 끝_『일침(一針)』, 정민, 김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