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반평생 예인으로 살고 파 품바를 부르는 삼순이
남은 반평생 예인으로 살고 파 품바를 부르는 삼순이
  • 김춘례
  • 승인 2019.09.20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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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후, 당당한 엄마로 예인으로 서고자 살아온 20여년의 세월

[칭찬신문=김춘례기자]  눈부시게 파란 주문진 바다처럼 시퍼런 가슴을 털어내며 '품바 삼순이' 공연무대에 오르기 전 바다 위 햇살이 내리면 영롱한 에메랄드 빛 부서지는 눈부심으로 삶의 순간순간을 긍정으로 바꿔온 여인이 있다.
 

무대에 오리기 전 '삼순이'
무대에 오리기 전 '품바 삼순이'

바로 우리나라 전통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품바 삼순이’가 주인공이다.

어머니에 어머니. 아버지에 아버지의 한을 가장 가까이에서 웃음으로 털어내게 하고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지닌 ‘품바 각설이’의 하루는 어디에 중심을 두고 있는 것일까?

서른 살에 이혼하고 1남 1녀의 자녀들에게 당당한 엄마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온 주문진 품바 '삼순이'는 어려서부터 춤과 노래가 좋았지만 가정 형편 때문에 고등학교를 자퇴하였지만 지금은 어엿한 중앙대대학원까지 졸업한 여인이다.

97년 충북 청주의 한 극단에서 8편의 연극무대에 선 '삼순이'는 2000년 품바 명인 이계준 선생님을 만나 제자가 된 후 각설이가 되었다.

2007년 음성품바대회에서 장려상을 수상하기도 한 '삼순이'는 전국을 유랑하는 팀에 합류했지만 여자라서 겪게 되는 수모가 많았다.

‘그 당시엔 남자 위주여서 여자를 많이 키우지 않았고 정선 5일장에서 4년 동안 품바로 활동하면서 많은 무시를 당하던 중 300여 명이 넘는 관객이 있는 무대 위에서 욕설과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예인으로 무대에서 욕설과 폭행을 당한다는 것은 큰 트라우마가 되어 신경정신과에서 우울증 치료를 받기도 했다.

그 후 정선을 떠나 아픔을 딛고 일어선 곳은 주문진이었다. 주문진 해주건어물 상인회장과 상인들의 배려로 주문진 품바로 거듭나며 엿을 팔수 있게 되면서 이혼 후에 사기로 경제적 어려움과 여자로서 또 엄마로서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2017년에는 강릉특산품으로 ’갯방풍엿‘과 ’오징어먹물엿‘을 개발하고 서민들이 즐겨 먹는 엿에도 건강을 위한 마음을 담아냈다.

지금은 아이들도 잘 자라주어 엄마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응원을 해 준다. 시간될 때 딸이 함께하며 무대에서 공연하는 엄마의 모습을 자랑스러워할 때 더 힘이 난다.

앞으로 꿈이 있다면 품바 삼순이를 필요로 하는 곳에는 언제나 달려가서 ’얼씨구 들어간다, 저얼씨구 들어간다‘ 하며 우리 부모님들의 한을 풀어주어 가슴에 웃음을 주고 아이들에게는 전통을 알게 하고 싶다.

그리고 ”작은 오두막집을 마련해 가마솥에 엿물을 끓이며 삼순이를 찾아오는 지인들에게 맛있는 엿 만드는 과정과 엿을 맛보여주며 그간 모아오고 배워온 전통 민속가구와 민화를 보여주며 남은 생을 예인으로 마감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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