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근담 349. 깨닫는 바 없으면 모두가 허사
채근담 349. 깨닫는 바 없으면 모두가 허사
  • 전형구 논설위원
  • 승인 2020.06.1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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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근담(菜根譚) - 349. 깨닫는 바 없으면 모두가 허사-후집 124

 

재화종죽(栽花種竹) 완학관어(玩鶴觀魚) 우요유단자득처(又要有段自得處).
약도유연광경(若徒留連光景).
완롱물화(玩弄物華) 역오유지구이(亦吾儒之口耳) 석씨지완공이이(釋氏之頑空而已) 유하가취(有何佳趣).

꽃을 가꾸고 대나무를 심으며 학()을 즐기고 물고기를 바라볼지라도 또한 그 가운데 일단의 깨닫는 바가 있어야 한다. 만약 한갓 그 광경에 빠져 겉모습만 희롱한다면 이는 역시 우리 유교(儒敎)에서 말하는 구이지학(口耳之學)’이요, 불교에서 말하는 완공(頑空)’일 뿐인즉 무슨 아름다운 취미가 되겠는가.

 

* 핵심 주제

구이지학(口耳之學)이란 양자(楊子)의 법언(法言)소인의 학문은 귀로 들어와 입으로 나간다. 입과 귀 사이에는 네 치일 뿐이니 어찌 족히 일곱 자의 몸을 아름답게 할 수 있으리요(小人之學也入乎耳出乎口 口耳之問則四寸耳 曷足以美七尺之軀乎)’란 구절이 있다.

완공(頑空)’이라 함은 소승불교의 견해로 만물은 일체의 공()’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사람을 피하고 세상을 등짐으로써 홍익인간의 정신이 결여된 완고함을 뜻한다.

비록 세속을 떠나 은둔생활을 즐긴다 하더라도 자연속의 참 진리를 터득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는 뜻이다.

 

- 채근담, 홍자성 저, 안길환 편역, 고전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