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작굴서, 자개노이식 (羅雀掘鼠, 煮鎧弩以食)
나작굴서, 자개노이식 (羅雀掘鼠, 煮鎧弩以食)
  • 전형구 논설위원
  • 승인 2023.05.04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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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신문=전형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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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신문=전형구 논설위원]나작굴서, 자개노이식 (羅雀掘鼠, 煮鎧弩以食) - 《『신당서』「장순전(張巡傳)」》

그물로 참새를 잡고, 땅을 파서 쥐를 잡다

 

  나작굴서, 자개노이식(羅雀掘鼠, 煮鎧弩以食)은 최악의 상황을 비유하는 말로 “그물로 참새를 잡고, 땅을 파서 쥐를 잡으며, 갑옷과 쇠뇌를 삶아 먹는 지경에 이른다.”는 말이다.

 

  『신당서』「장순전(張巡傳)」에 나오는 말로, 당나라 천보(天寶) 말기에 살았던 장순은 충직한 신하였을 뿐 아니라 재주도 많고 담력 또한 남달랐다. 안녹산의 반란으로 나라가 혼란스러울 때, 그는 원일이라는 자와 함께 수양의 성을 수비하고 있었다.

757년 안녹산의 아들 안경서가 대장군 윤자기를 보내 수양성을 공격했다. 장순이 지키고 있는 수양성에는 겨우 3000여 명의 군사뿐이었으나, 반란군은 10만 명이 넘어 대적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장순은 비록 병사의 수에서는 열세를 면치 못했지만 죽음을 각오하고 성을 지키려 했다. 하지만 반란군에 포위된 지 며칠 안 되어 비축해 놓은 군량미는 바닥이 났고, 식량 공급도 되지 않아 성안의 사람들은 점점 굶주림에 허덕이게 되었다.

  허기에 지친 병사들은 나무껍질을 벗겨 씹어 먹기도 하고, 그물을 쳐 참새를 잡아먹기도 했으며, 땅을 파서 쥐를 잡아먹기도 했다. 병사들은 심지어 갑옷과 쇠뇌를 삶아 먹기까지 했다.

  상황은 시간이 흐를수록 악화되어 더는 성을 지키기 어려워졌고, 마침내 장순은 반란군의 포로가 되었다. 장순은 항복을 요구하는 자들을 쏘아보고 우레 같은 목소리로 한바탕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자 반란군은 그 자리에서 그의 목을 베었다.

 

  그의 죽음을 지켜보아야만 했던 장순의 부하들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으며, 죽음과 바꾼 충성심에 새삼 고개가 떨구어지는 이야기이다.

 

- 매일 읽는 중국고전 1일1독, 김원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