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규어유, 가이지천도(不窺於牖, 可以知天道)
불규어유, 가이지천도(不窺於牖, 可以知天道)
  • 전형구 논설위원
  • 승인 2023.05.09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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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규어유, 가이지천도(不窺於牖, 可以知天道) - 《『韓非子』「유로」》

창문에서 엿보지 않고도 하늘의 이치를 안다

 

  불규어유, 가이지천도(不窺於牖, 可以知天道)는 문을 나서지 않고도 천하를 알 수 있다는 말과 비슷하며, 천하의 이치를 터득하는 통찰력을 말한다.

 

  『韓非子』「유로」편에 나오는 글로, 한비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들었다. 왕수란 자가 책을 짊어지고 가다가 주나라 땅에서 서풍을 만나게 되었다. 서풍이 말했다.

  “일이란 실행하는 것이고, 실행 결과는 때에 따라서 나타나는데 그 상황이 항상 같지는 않다. 책은 옛사람의 말을 기록한 것이고, 말은 지혜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 지혜로운 자는 책을 소장하지 않는다. 지금 그대는 어찌해서 책을 짊어지고 가는가?”

  이에 왕수는 그 책을 불사르고 춤을 추었다.

 

  지혜로운 자는 말로 사람을 가르치지 않고, 현명한 자는 책을 상자 속에 간직하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은 이를 간과하지만 왕수는 바른 길로 되돌아간 셈이다. 배움이 책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터득한 것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또 하나 있다. 「유로」편에 “작은 것을 꿰뚫어 보는 것을 ‘명(明)’이라 한다(見小曰明).”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낙엽 하나를 보고 천하의 가을을 안다는 말과 통한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정확하게 집어내고 사소한 것의 의미까지 포착하는 능력이 바로 ‘明’이다.

 

  송나라 당경(唐庚)의 『문록(文祿)』에 인용된 당 대 시인의 시에도 유사한 구절이 있다. “산속 스님은 갑자를 헤아리지 않고, 낙엽 하나로 천하에 가을이 왔음을 아네(山僧不解數甲子 一葉落知 天下秋).”

 

  세상의 이치를 아는 법은 널려 있다. 물론 그런 통찰력을 보여주는 사람은 드물다.

 

- 매일 읽는 중국고전 11, 김원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