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토중래(捲土重來)
권토중래(捲土重來)
  • 전형구 논설위원
  • 승인 2023.05.09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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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토중래(捲土重來) - 《두목(杜牧) 「제오강정(題烏江亭)」》

흙먼지를 말아 다시 온다

 

  권토중래(捲土重來)는 패배한 뒤 다시 세력을 규합하여 쳐들어온다는 의미로, 어떤 일에 실패했더라도 힘을 쌓아 다시 일에 착수하는 것을 말한다,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이 「제오강정(題烏江亭)」에서 노래한 시구에서 나왔다.

  승패병가불가기(勝敗兵家不可期), 이기고 지는 것은 전쟁에서 기약할 수 없는데,

  포수인치시남아(包羞認恥是男兒), 치욕을 안고 견디는 것이 사나이다.

  강동자제다재준(江東子弟多才俊), 강동의 자제들 중에는 인재가 많으니,

  권토중래미가지(捲土重來未可知). 흙을 말아 올려 다시 오는 날을 아직 알지 못한다.

 

  두목의 푸념은 권토중래하지 못하고 단 한 번의 패배에 목숨마저 내던진 항우의 심약한 모습에 대한 서글픈 감회를 드러낸 것이다.

 

  『사기』「항우 본기」에 의하면 야심 많고 세상사에 거침없던 항우는 키가 8척이 넘고 힘은 정(鼎)을 들어 올릴 정도였으며 재기(才氣)가 범상치 않았다. 그는 숙부 항량과 함께 회계산을 유람하고, 절강을 건너다 진시황의 행차를 보고는 “저자의 자리를 내가 대신하리라.”라고 했던 기백의 소유자였다. 결국 그는 진나라 왕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패권을 잡아 초나라 지역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한편에서는 건달 출신 유방이 북방을 터전으로 암중모색하면서 항우와의 건곤일척의 승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항우가 우미인과 술에 빠져든 사이 유방은 패배를 설욕할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기원전 202년 겨울 유방은 항우를 해하에서 포위하여 사면초가의 벼랑 끝으로 몰고 간다.

 

  항우는 주변의 만류에도 최후까지 지나친 만용을 부리다가 31세의 나이로 스스로 최후를 마감했다. 사마천은 항우가 불과 28명의 기병을 이끌고 관영이 지휘하는 5000명의 정예병과 대적하면서 혼자 수백 명을 죽이는 장면, 자신의 머리에 내걸린 현상금을 차지하려는 자들을 향해 몸을 내던지는 장면 등을 묘사하면서 항우의 패망이 결코 하늘의 뜻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지나친 과신이 부른 역사적 필연임을 은연중에 강조하고 있다.

 

- 매일 읽는 중국고전 1일1독, 김원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