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씻다
귀를 씻다
  • 전형구 논설위원
  • 승인 2023.07.20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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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洗耳) - 『고사전(高士傳)』「허유(許由)」

[칭찬신문=전형구 논설위원] 세이(洗耳)는 세속에 물들지 않고 고결한 삶을 살아가려는 의지를 비유하는 말로 기산세이(萁山洗耳), 영수세이(潁水洗耳)라고도 한다.

『고사전(高士傳)』「허유(許由)」편에 나오는 글로,

허유는 사리가 분명하고 한 치의 흐트러짐을 보이지 않는 선비였다. 그의 성품을 높이 평가한 요임금은 자신의 자리를 물려줄 만하다고 생각하여 그 뜻을 전했으나, 허유는 거절하고 거처까지 옮겨 버렸다. 이에 요임금은 허유가 은거하고 있는 기산에 다시 사신을 보냈다. 허유는 요임금이 자신을 구주(九州)의 수장으로 삼으려 한다는 사자의 말을 듣자, “들으려 하지 않고 영수 가에서 귀를 씻었다.”

그때 친구 소부가 송아지를 끌고 와 물을 먹이려다 허유가 귀 씻는 것을 보고 그 까닭을 물었다. 허유가 “요임금이 나를 불러 구주의 수장으로 삼으려 하기에 그 소리가 듣기 싫어 귀를 씻고 있었네.”라고 답하자, 소부는 한술 더 떠 시큰둥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자네가 만일 높은 언덕과 깊은 계곡에만 거처한다면 사람 다니는 길이 통하지 않을 테니 누가 자네를 볼 수 있었겠는가? 자네가 일부러 떠돌며 그 명예를 듣기를 구한 것이니, 내 송아지의 입을 더럽히겠구려.”

그러고는 송아지를 끌고 상류로 올라가 물을 먹였다. 소부도 그 길로 기산으로 들어가 나무 위에 집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최고 권력을 단칼에 거절할 수 있는 이는 세상에 흔치 않다. 귀를 씻은 허유나, 은자인 것조차 알리지 말아야 한다며 귀 씻은 물마저 더럽다는 소부의 절개와 지조는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 매일 읽는 중국고전 1일1독, 김원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