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엽성음(綠葉成陰) - 두목의 「창시」
녹엽성음(綠葉成陰) - 두목의 「창시」
  • 전형구 논설위원
  • 승인 2023.09.01 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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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잎이 그늘을 만든다

[칭찬신문=전형구 논설위원] 녹엽성음(綠葉成陰)은 여자가 결혼하여 자녀가 많은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두목의 「창시」에서 나온 말로,
두목이 호주(湖州)를 유람하던 때의 일이다.
어떤 여인과 마주쳤는데, 그 여인이 데리고 있던 열 살 남짓한 어린 딸아이가 두목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빼어난 얼굴이었다.
호탕한 성격의 두목은 자신도 모르게 그 딸에게 마음이 끌려 여인에게 말했다.

 “10년 뒤 이 아이를 제 아내로 맞이하고 싶습니다. 만일 10년이 지나도 제가 나타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시집보내십시오.”
그 여인도 흔쾌히 승낙했다.

그러나 두목이 호주를 다시 찾은 때는 약속한 10년보다 4년이 더 지난 뒤였다.
그녀의 행방을 수소문해 보니 이미 3년 전에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 자식을 두고 있었다.
실망한 두목은 안타까운 마음에 시 한 수를 지어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나타냈다.

 “자시심춘거교지(自是尋春去較遲) - 그로부터 봄을 찾았으나 좀 늦게 갔기에
  불수추창원방시(不須惆悵怨芳時) - 꽃다운 날 원망하여 슬퍼할 수도 없구나
  광풍락진심홍색(狂風落盡深紅色) - 거센 바람이 진홍색 꽃을 다 떨어뜨리고
  녹엽성음자만지(綠葉成陰子滿枝) - 푸른 잎이 그늘을 만들어 열매만 가득하네.”

이 칠언절구는 제목이 없었으나 당시 사람들이 ‘창시(愴詩)’, 즉 슬픈 시라고 일컬었다.
세월이 흘러도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던 그 아리따운 여인은 이미 없다.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한 게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훗날 이 시는 제목이 ‘탄화(嘆花)’로 바뀌었다고도 전해온다.
바뀌지 않은 것은 그녀를 향한 두목의 순수한 마음뿐이었을까.

 

- 매일 읽는 중국고전 1일1독, 김원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