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명산(藏之名山)- 『史記』「태사공자서」
장지명산(藏之名山)- 『史記』「태사공자서」
  • 전형구 논설위원
  • 승인 2023.09.03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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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명산에 감춰 두다

[칭찬신문=전형구논설위원] 장지명산(藏之名山)은 제대로 평가 된 평가를 위해 깊이 감춰 두고 기다린다는 의미이다.

『史記』「태사공자서」에 나오는 글로,
사마천이 『史記』 130편을 완성하고 나서 이 책이 몰고 올 파장에 대한 두려움으로 한 말이다.
 “그것(정본)을 명산에 감춰 두고 부본(副本)은 수도에 두어 후세 성인군자들의 열람을 기다린다.”

부친의 유언을 받들어 방대한 역사서 『史記』를 완성한 사마천은 인간과 권력을 다룬 이 책의 예사롭지 않은 운명을 예감했다.
그의 말처럼 이 책은 오랫동안 왕실과 역사가들에게 외면 받은 채 몇 세기를 보내야 했다.
도가와 병가. 잡가 등 제자백가를 두루 다루어 한 대의 국가 이념인 유학에 배치된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사마천은 자객과 골계가, 점쟁이, 유세가, 의사 등 당시 세상의 소외된 자들을 과감히 역사의 주류로 등장시켰다.
더욱이 사마천에게 궁형의 치욕을 안긴 한 무제에 대한 비판적 서술이 문제였다.
무제는 사마천이 『史記』에서 아버지 경제와 자신의 치부를 밝혀 신랄하게 비판한 것을 보고 매우 노여워하며 이 두 본기(本紀)를 폐기하도록 지시했다고 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史記』는 곧 진가를 드러내었다. 당나라의 문장가 유종원은 『史記』를 ‘웅심아건(雄深雅健)’이라고 평가하면서 문장 학습의 기본으로 삼았고, 구양서는 애호가로서 『史記』를 즐겨 읽으면서 글을 지을 때 이용하기도 했다.

『史記』의 위상은 청 대에 기윤과 조익, 장병린 등에 의해 더욱 확고해졌으며, 근대 중국의 루쉰에 의해 ‘千古의 절창(絶唱)’이라는 칭송을 들었다.

 

- 매일 읽는 중국고전 1일1독, 김원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