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박사의 독서경영 - [우리 역사를 바꾼 귀화 성씨]
전박사의 독서경영 - [우리 역사를 바꾼 귀화 성씨]
  • 전형구 논설위원
  • 승인 2023.11.01 23: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박사의 독서경영 - <우리 역사를 바꾼 귀화 성씨>
<우리 역사를 바꾼 귀화 성씨>에서 배우는 독서경영


  저자 : 박기현                 출판사 : 역사의 아침

  “우리 땅을 선택한 귀화인들의 발자취”라는 부제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이 책은 상고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공적이듯 사적이든 우리 땅에 들어온 이방인들 중 자신의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 땅에서 살고자 귀화한 인물들의 발자취를 살펴보고 있다. 

  이 책은 우리 땅에 정착한 귀화인들 중에서 9명의 대표적 인물을 선정하여, 역사적 기록을 토대로 당시의 정황을 정리하고 시대별 귀화 성씨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대륙에서 이곳저곳의 난을 피해, 혹은 정치, 사회, 문화, 경제적 이유 때문에 한반도로 이주해 온 수많은 집단들은 귀화한 시기는 모두 다르지만 미워하지 않고 서로 껴안아 일심동체의 문화적 구심점으로 새로운 역사를 일구어냈다.

  이 책은 두 개의 큰 흐름으로 정리되어 있다. 1부는 "한반도를 선택한 사람들"로 유구 산남왕 온사도(다시 돌아갈 수 없는 비운의 망명왕), 베트남 망명 왕족 이용상(화산 이씨), 흉노족 왕자 김일제(경주 김씨), 인도 아유타의 공주 허황옥(김해 허씨), 원나라 공주를 따라온 위구르 출신 장순룡(덕수 장씨), 이성계의 오른팔 여진족 이지란(청해 이씨), 조선을 사랑한 일본 장수 김충선(사성 김해 김씨), 조선에서 전사한 명나라 장수 가유약(소주 가씨), 조선에 뿌리내린 네덜란드인 박연(파란 눈의 박씨) 등 9명의 귀화인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나 볼 수 있다.
  2부는 "우리나라를 찾은 귀화인의 역사"에 대해 상고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시대별 귀화인의 특성에 대해 정리하였고, 특히 DNA를 통해 본 한민족의 실체에서 단일 민족이라는 것에 대한 진실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 민족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리고 우리 땅에서 무슨 일을 해냈을까? 단군 이래 5천 년 동안 단일 민족이라는 말이 과연 맞는 것일까?
  자료를 추적하고 모으는 가정에서 나는 우리 민족이야말로 ‘잡탕’이라 할 만큼 외래집단의 혼성체로, 한반도라는 살기 좋은 큰 그릇 속에 서로 녹여가며 일체감을 이뤄낸 자랑스러운 민족공동체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리고 이 결론은 “유리는 단일민족이야!”라고 외치는 허구성 짙은 메아리보다 훨씬 듣기 좋고 가슴에 와 닿는다.
  대륙에서 이곳저곳의 난을 피해, 혹은 정치, 사회, 문화, 경제적 이유 때문에 한반도로 이주해 온 수많은 집단들은 귀화한 시기는 모두 다르지만 미워하지 않고 서로를 껴안아 일심동체의 문화적 구심점으로 새로운 역사를 일구어냈다. - <프롤로그 - 귀화 성씨, 역사를 만들다> 중에서

  장유는 신흠, 이식 등과 더불어 조선시대 한문학의 4대가로 꼽히는 인물로 그의 문장에 대해서는 감히 거론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는 인조반정 당시 이조정랑을 맡아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대사간, 대사헌, 이조판서, 우의정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우의정 김삼용의 사위이며, 그가 낳은 딸은 효종의 왕비 인선왕후가 되었다. 그녀가 낳은 1남 6녀 가운데 유일한 아들이 효종의 뒤를 이어 왕이 되니 그가 곧 현종이다. 그러니 덕수 장씨는 한반도에 들어와 결국 외손이긴 하지만 왕통의 핏줄을 이운 성씨가 되었다. 이렇게 볼 때 장순룡은 한반도의 역사를 고쳐 쓰게 한 중요한 인물이다. 시호는 문충(文忠)이고 신풍부원군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장씨의 후손은 가문을 키워 많은 자손을 뿌리내렸다. - <원나라 공주를 따라온 위구르 출신 장순룡_덕수 장씨> 중에서 
  
  박연은 인조 5년인 1627년에, 동료 두 명과 함께 제주에 도착했다. 네덜란드 이름으로는 벨테브레, 흘란디아 호에서 선원으로 일하다가 1627년 우베르케르크 호로 바꿔 타고 일본을 향하여 항해하던 중 제주도에 표착한 것이다. 그는 동료 히아베르츠, 피에테르츠와 함께 음료수를 구하려고 상륙했다가 관헌에게 붙잡혀 한양으로 호송되었다.
  박연은 하멜이 도감군오(都監軍伍)에 소속되자 그를 감독하는 한편 조선의 풍속을 가르쳤다. 그는 하멜이 자신처럼 조선에 귀화하기를 원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하멜은 조선에 귀화할 생각이 없었다. 박연은 총과 대포에 대한 지식 때문에 조선에 머물기를 원하기도 했고, 조선 조정의 대우에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하멜 일행이 자신들을 풀어주면 네덜란드 선박이 일본에 자주 오므로 당신도 돌아갈 수 있다는, 귀사 솔깃한 제안을 했으나 박연이 그 자리에서 거절하고 조선에 정착하기를 권한 것이다. - <조선에 뿌리내린 네덜란드인 박연_파란 눈의 박씨>

  현재 국내에 있는 성씨를 조사한 결과 약 46퍼센트가 귀화 성씨라고 판단되는데, 인구 수로 보면 전체 인구의 약 20퍼센트에서 거의 절반까지 달한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이 차이는 몇몇 성씨들을 포함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달라진다. 어쨌든 기원이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귀화 성씨로 짐작되는 몇몇 성씨를 합하면 귀화인이 인구의 절반에 육박하는 것이다.
  어쨌든 따지고 보면 이 같은 외국에서의 귀화인 유입을 알면서도 단일 민족 운운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이제는 무조건 순수한 혈통이라며 단일 민족을 논할 게 아니라 포용력과 적응력이 뛰어난 다민족을 이야기해야 할 형편이다. - <얼마나 많은 귀화인이 들어왔을까?> 중에서

  고구려의 경우 귀화인들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찾기는 어렵다. 실제 수나라, 당나라에서 많은 귀화인들이 들어온 것으로 보이나 기록이 남아 있지 않고, 신라가 통일 왕국을 이룩하면서 많은 사료들이 묻혀버렸다. 또 있다. 해도 대부분 북한 지역에 있어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고구려가 요동에 가지고 있던 넓은 땅에 수많은 귀화인들이 들어온 것은 분명하다. - <삼국시대의 귀화인들> 중에서

  이밖에 전쟁 중 사로잡은 포로들은 노비나 천민으로 받아들여 왕실이나 관부, 각 현에 보내 노비로 살아가게 했다. 이 같은 결과를 종합해볼 때 고려 사회는 "들어온 이들은 거부하지 않는다"는 적극적 수용 원칙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고려 조정은 귀화한 이들은 사회 깊숙이 받아들여 이질적인 문물을 흡수하고 발전시켜감으로써 더욱 융화되고 성숙한 사회를 이룩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고려시대의 귀화인들> 중에서

  고려에 이어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귀화인 우대 정책은 일관되게 유지되었다. 조선시대 초기 귀화 정책은 여진족에 대한 포섭과 격려, 결혼 정책, 강제 이주, 인질책 등으로 주로 북방 경계를 지켜내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졌다. 귀화인들을 통해 북방의 정보를 얻고 여진과 적당한 교섭, 통상을 계속했으며 유사시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방비책으로 귀화인들을 이용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의 귀화인들> 중에서  
 
* 전박사의 핵심 메시지

  우리 민족은 그 어느 나라보다 단결이 잘 되고 한번 뭉치면 무서운 힘을 발휘한다. 우리 안에는 대륙을 달구던 뜨거운 기상과 모험심, 지평선을 바라보며 한없이 웅대한 꿈을 키운 유목민의 피, 반도체를 만들어 세계 최고의 기술을 자랑하게 하는 섬세한 예술혼이 다양한 유전 인자와 함께 녹아 있다. 그리고 그것은 반만년 동안 한반도에 차례로 들어와 동화된 귀화인들 덕분이다.

  우리 민족은 오천 년 동안 단일 민족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저자의 생각처럼 과연 우리 민족이 단일 민족인가에 대한 의문은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삼면이 바다에 둘러싸여 있고, 북쪽은 중국 대륙에 맞닿아 있는 지정학적 위치로 수많은 침략과 전쟁을 치렀던 우리 민족이 단일 민족이라고 고집할 수 있을까. 

  이 책을 통해 어느 정도 답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우리 민족은 이미 상고시대부터 단일민족이 아닌 다민족 국가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세계 시민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다름을 인정할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세계화의 추세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늘어나는 외국인 노동자들, 국제결혼을 통해 들어오는 외국인 배필들은 이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우리와 문화가 다르고, 피부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다고 차별을 둘 것이 아니라 포용하고 어울리며 살아가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 이들도 이제는 우리 국민이고 우리의 자랑스러운 이웃이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인, 일본인들뿐만 아니라 동남아, 아랍, 심지어 아프리카인들이 우리나라에 귀화하면서 새로운 성씨를 만들며 시조가 되고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뉴욕 전씨, 상해 전씨, 런던 전씨의 시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자연스러운 현상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게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