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박사의 독서경영 - [언어의 온도]
전박사의 독서경영 - [언어의 온도]
  • 전형구 논설위원
  • 승인 2024.03.11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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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박사의 독서경영 - <언어의 온도>
<언어의 온도>에서 배우는 독서경영


  저자 : 이기주,    출판사 :말글터

  “말과 글에는 나름의 따뜻함과 차가움이 있다”라는 부제가 있는 이 책은 저자가 일상에서 발견한 의미 있는 말과 글, 단어의 어원과 유래, 그런 언어가 지닌 소중함과 절실함을 농밀하게 담아내고 있다. 
  저자는 엿듣고 기록하는 일을 즐겨 하는 사람이다. 그는 버스나 지하철에 몸을 실으면 몹쓸 버릇이 발동한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는 이들이 나누는 말과 글에는 따뜻함과 차가움의 정도는 저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나름의 온도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치열하게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세상살이에 힘들고 지칠 때 친구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고민을 속 시원하게 털어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책을 통해 작가가 건네는 문장으로 위안을 얻기도 한다. 용광로처럼 뜨거운 언어에는 감정이 잔뜩 실리기 마련이다. 말하는 사람은 시원할지 몰라도 듣는 사람은 정서적 화상(火傷)을 입을 수 있다. 또한 얼음장같이 차가운 표현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 상대의 마음을 돌려세우기는커녕 꽁꽁 얼어붙게 한다. 
  이렇듯 ‘언어’나 ‘글’은 한순간 사람들의 마음을 꽁꽁 얼리기도 하지만, 그 꽁꽁 얼어붙었던 마음을 한순간 녹여주기도 한다. 

  이 책은 크게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장은 “말(言), 마음에 새기는 것”이라는 주제로 29편의 이야기를 통해 말에도 온도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2장은 “글(文),지지 않는 꽃”이란 주제로 역시 29편의 소소한 글들이 소개되고 있다. 3장은 “행(行), 살아있다는 증거”라는 주제로 30편의 아름다운 사연을 들려주고 있다.

  언어에는 나름의 온도가 있습니다. 따듯함과 차가움의 정도가 저마다 다릅니다. 
  온기 있는 언어는 슬픔을 감싸 안아줍니다. 세상살이에 지칠 때 어떤 이는 친구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고민을 털어내고, 어떤 이는 책을 읽으며 작가가 건네는 문장에서 위안을 얻습니다.
  용광로처럼 뜨거운 언어에는 감정이 잔뜩 실리기 마련입니다. 말하는 사람은 시원할지 몰라도 듣는 사람은 정서적 화상(火傷)을 입을 수 있습니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표현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상대의 마음을 돌려세우긴 커녕 꽁꽁 얼어붙게 합니다. - <서문_당신의 언어 온도는 몇 도쯤 될까요> 중에서

  우리는 늘 무엇을 말하느냐에 정신이 팔린 채 살아간다. 하지만 어떤 말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가 중요하고, 어떻게 말하느냐 보다 때론 어떤 말을 하지 않느냐가 더 중요한 법이다. 입을 닫는 법을 배우지 않고서는 잘 말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끔은 내 언어의 총량(總量에 관해 고민한다. 다언(多言)이 실언(失言)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종종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 물어본다. 말 무덤에 묻어야 할 말을, 소중한 사람의 가슴에 묻으며 사는 건 아닌지…. - <말(言), 마음에 새기는 글_말의 무덤, 언총(言塚)> 중에서 

  세상이 변해도 너무 빨리 변한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다음 날이 낯설기까지 하고, 심지어 옳음과 그름의 기준도 시시각각 변한다.
  정답은 없다. 아니, 모두가 정답이 될 수 있고 모두가 오답이 될 수도 있다. 복잡한 사실과다양한 해석만 존재할 분이다. 사정이 이러한데 세상에 ‘원래 그러한 것’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삶도, 사람도 그리 단순할 리 없다.
   돌이켜보면, 내 내면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랐던 질문처럼 절박하고 명확한 것도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걸 따라가는 과정에서 널찍한 신작로는 아니지만 나만의 샛길을 발견하곤 했다.
  호기심이 싹틀 대 “원래 그렇다”는 말로 억누르지 않았으면 한다. 삶의 진보는, 대개 사소한 질문에서 비롯된다. - <말(言), 마음에 새기는 것_원래 그런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중에서

  그리움을 품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닿을 수 없는 인연을 향한 아쉬움, 하늘로 떠나보낸 부모와 자식에 대한 애틋한 마음, 결코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대한 향수 같은 것은 마음속에 너무 깊게 박혀 있어서 제거할 방도가 없다.
  채 아물지 않은 그리움은 가슴에 헤집고 돌아다니기 마련이다.
  그러다 그리움의 활동 반경이 유독 커지는 날이면, 우린 한 줌 눈물을 닦아내며 일기장 같은 은밀한 공간에 무장을 적거나, 책 귀퉁이에 낙서를 끼적거린다. 그렇게라도 그리움을 쏟아내야 하기에. 그래야 견딜 수 있기에…. - <글(文),지지 않는 꽃_긁다, 글, 그리움> 중에서

  영화나 동화속 사랑은 기적을 만들어내지만, 현실의 사랑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사랑은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 
  사랑은 대대로 무기력하다. 사랑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기는커녕 오히려 사랑 때문에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다만 사랑은 동전의 양면 같은 성격을 지닌다. 우리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들이밀기도 하지만, 그 구렁텅이에서 건져 올리는 것 역시 사랑이라는 이름의 동아줄임을 부정할 수 없다.
  우리를 망가뜨리지 않는 사랑은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 사랑의 가치를 부정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 <글(文),지지 않는 꽃_사내가 바다로 뛰어드는 이유> 중에서  

  어느 유명한 사회심리학자가 그러더군. 사랑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이성 간의 사랑은 그 가운데 가장 배타적이라고 어쩌면 사랑이 두 사람을 단위로 한 이기주의일 수도 있다고.
  그 말을 곰곰 되씹어봤다. 사랑에 빠지면 우린 상대방을 독점하고 싶어 한다. 그러므로 사랑에는 이기적인 요소가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규정만으로 사랑의 본질은 단언할 순 없다. 사랑만큼 복잡한 감정도 없다. 기질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서로를 보완하고 아끼는 마음도 사랑이며. 각자가 지닌 삶의 조각을 맞추거나 서로에게 맞춰지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 또한 사랑이다. - <행(行), 살아 있다는 증거_사랑은 종종 뒤에서 걷는다> 중에서  

  인생의 길을 걷다보면 폴라처럼 낯선 방향으로 발을 내디뎌야 하는 순간이 있다.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는 작별이든 서로 갈리어 떨어지는 별리(別離)든 우린 인력(人力)으로 감히 어찌할 수 없는 헤어짐을 겪어야만 한다.
  이때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서 서성이기보다 눈물을 머금더라도 있는 힘을 다해, 제 발로 땅을 박차고 울타리를 뛰어넘어야 한다.
  고민을 해결하진 못해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것을 묽게 희석(稀釋)할 때, 꿈에 도달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꿈과의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하거나 지켜낼 때 우린 ‘어른’이 아닌 ‘나다운 사람’이 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울타리 저편에 남겨진 소중한 사람과 추억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싶다. - <행(行), 살아 있다는 증거_어른이 된다는 것 중에서

* 전박사의 핵심 메시지

  몇 년 전 한글날을 맞아 모 방송국 아나운서실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한 걸 방송에서 본 적이 있었다. 밥을 지어 두 개의 유리병에 각각 넣어두고 한쪽 병에 든 밥에는 아나운서들이 지나갈 때마다 ‘고맙다’ ‘사랑하다’라는 긍정의 말을 했고, 다른 쪽 병에 든 밥에는 ‘넌 쓸모없어’ ‘넌 나쁜 밥이야’라는 부정적 말을 했다고 한다. 
  그 결과는 놀랍게 나타났다. 긍정의 말을 받은 유리병 속의 밥은 몇 날, 몇 일이 지나도록 멀쩡하다가 발효되어 누룩 냄새가 났다. 하지만 부정적 말을 받은 유리병 속의 밥은 얼마가지 못해 부패해서 검은 색으로 변했고 악취가 났다. 말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실험이었다.

  우리는 수많은 말과 글 속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내가 뱉는 말도 있을 것이고, 내가 듣는 말도 있을 것이다. 내가 유리병 속의‘밥’이라면 어떤 말을 듣기를 원했을까. 당연히 ‘감사하다’ ‘고맙다’ 등의 긍정적인 표현의 말과 글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하는 말이나 글을 보는 상대방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다. 긍정적이고, 힘이 나는 말과 글을 듣고 보고 싶은 게 당연한 이치다.

  따라서 ‘말과 글에 따듯함과 차가움이 있다’라는 저자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엎질러진 물을 다시 주어 담을 수 없듯이 한 번 내뱉은 말 역시 다시 담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말을 한때는 신중하게 생각하고 해야 된다. 
  ‘삼사일언(三思一言)’이라는 예 선현들의 이야기를 그냥 흘러 들을 일이 아니다. 내가 뱉은 한 마디가 상대방에게는 희망이 될 수도 있지만 가슴에 못이 박히는 큰 상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수한 글과 말이 오고가는 이 시대에 말과 글의 중요성을 한번쯤 생각하게 하는 한 권의 책이다. 이 책을 통해 따뜻한 온도의 말과 글이 아름다운 사회를 만드는 씨앗이 되면 좋겠다.